◆----지식&취미----◆/식물공장관련

[스크랩] 한자로 푸는 농업의 큰 본디-농사 농(農)

orzzi 2016. 3. 10. 00:09

농사는 온 세상의 큰 본디다. 한문으로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고 한다. 오래된 이 말의 뜻을 현대 산업의 융성(隆盛)이 다소 빛바래게 하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의 먹거리를 재배하여 수확하는 이 일 만큼 숭고한 것은 더 없다. 하늘과 땅의 기운을 수만 년 인류의 지혜와 질박(質朴)한 땀으로 품어내는 일이지 않는가.

 

농사 농(農)자는 크나 큰 그 뜻을 너끈하게 보듬는다. 이 글자는 별 진(辰)자로부터 말미암는다. 조가비 또는 조가비 밖으로 발을 내밀고 있는 조개를 그린 것으로 보이는 이 진(辰)자는 그 옛날 조가비가 농기구로 쓰인 바가 인연이 되어 농업 또는 농사의 뜻을 지니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갑골문의 농(農)자와 이후 시기 글자의 변화

 

첫 글자라고들 하는 옛 그림 글자 갑골문(甲骨文)에서 농(農)자는 수풀 림(林)과 별 진(辰)의 조합으로 나타난다. 다른 갑골문에서는 림(林) 대신 풀 초(艸)가 보이기도 한다. 세월이 지나 금문(金文) 시기에 이르면 여기에 경작지를 뜻하는 전(田)자가 붙는다. 다양한 변화를 거쳐 전(田)이 형태가 비슷한 곡(曲)자 모양으로 변한다. 림(林)자 초(艸)자를 비롯한 여러 모양의 글자들이 금문 이후 현대에도 쓰이는 해서(楷書)에 이르는 오랜 동안 이 농(農)자를 이루는데 한 역할 씩을 해 왔다. 나무와 풀을 가꾸는 일을 이른 것이다. 그러나 내내 별 진(辰)자는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켰다.

 

때로 ‘신’으로 읽는 이 글자는 원래 해[日] 달[月] 별[星]을 모두 지칭하는 낱말이었다. 일월성신(日月星辰)이 그것이다. 해변 조가비로부터 생겨난 그림글자가 고대 천문학에서 천상(天上)의 존재를 모두 아우르는 큰 뜻이 된 것이다. 조개가 껍데기를 벌려 활발히 움직이는 이른 봄에 전갈좌(座)의 별이 나타난다 하여 '별'의 뜻이 됐다고 푸는 자료도 있다.

 

천문학의 까마득한 시초는 제사(祭祀)를 지내기 위해 필요한 여러 사항과 함께 농사를 위한 해와 달의 운행(運行)을 따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德目)인 시간이다. 시기를 맞추지 못한 농사, 천문(天文)을 읽지 못한 농사는 당연히 흉작(凶作)이다. ‘시간’이란 뜻을 얻은 진(辰)자의 지위는 더 격상(格上)되어 방위(方位)로는 동남(東南)쪽, 시각은 오전 7~9시, 달로는 음력 3월을 가리키는 12지(支)의 제5위에 이르게 됐다.

 

중국 후한의 문자학자(30~124) 허신(許愼)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이 진(辰)자를 ‘백성들이 농사지을 때’라고 풀었다. 염정삼 저(著) <설문해자주(注) 부수자역해>는 이 글자를 ‘진동(振動)한다는 뜻이다. 음력 3월은 양기(陽氣)가 움직여 우레와 번개가 치고 백성들이 농사지을 때이며 만물은 자라난다.’고 풀었다. 또 ‘진(辰)은 (별의 하나인) 방성(房星)으로 천시(天時)를 나타낸다.’고도 했다. 넘치는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천상의 일월성신과 천하(지상)의 논밭[田]이 함께 나무와 풀의 자람과 열매 맺음을 북돋운다. 이것이 ‘온 세상의 큰 본디’임을 이 글자는 웅변한다. 논을 뜻하는 답(畓)은 벼농사를 많이 짓는 우리 선조 동이족(東夷族)이 만든 글자다. 원래 한자는 논밭을 구분하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그 모양만을 보고 농(農)자를 ‘별[辰]의 노래[曲]’ 라고 풀기도 한다. 이는 말의 뜻 즉 어의(語義)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 조상을 비롯한 옛 동아시아 사람들의 상상력의 결집(結集)인 한자의 역사성을 채 헤아리지 못한 얼치기 해석이다. 기껏 별의 곡조(曲調)만을 담은 글자가 아니다. 위에서 본 것처럼 글자 한 조각에 우주의 섭리(攝理)를 다차원적으로 포괄(包括)하는 낱말이 농사의 농(農)자인 것이다.

 

인간을 먹이고 공기와 물, 산과 계곡, 강과 바다를 튼실하게 지켜내는 것이 바로 농(農)이다. 부국강병(富國强兵)의 허튼 생각에 절어 자연의 자애(慈愛)와 인간성을 마냥 허비해버리는 비극적인 시대의 모습을 정화(淨化)하는 순수한 에너지인 것이다. 이 귀한 농(農)을 장사치의 천박한 눈으로만 보고 있는 자들은 누구인가?

 

갑골문의 농(農)자

토막해설-농사 농(農)
별 진(辰)자 부수에 속하며 ‘농사(農事), 농부(農夫), 농사짓다, 노력(努力)하다’ 등의 뜻으로 쓰인다. 갑골문 시기에 이미 진(辰)자와 함께 쓰인 역사 깊은 단어로 별 진(辰), 밭 전(田), 수풀 림(林), 풀 초(艸)자 등의 글자의 뜻을 모은 회의자(會意字)다. 별 진(辰)에 손[又(우)]과 비슷한 뜻인 마디 촌(寸)을 합한 글자인 욕(辱)자가 ‘풀 베다, 농사짓다’는 뜻으로 별 진(辰)자 대신 쓰였던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 욕(辱)자는 중요한 농사 때를 어긴 자를 처벌해 욕보인다는 뜻에서 후대에  ‘욕되다’의 의미로 바뀌어 지금에 이른다.

 

출처 : 결코 시간이 멈추어질 순 없다
글쓴이 : 맑은호수 원글보기
메모 :